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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9 겨울 새벽바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을 걸 그랬다

겨울 새벽바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을 걸 그랬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5시간 동안 차를 몰아 동해바다 강구항에 갔다. 
도착하니 캄캄한 새벽이다. 

여명이 밝아오길 기다리니 마침내 동쪽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구항 선착장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과 아직 불 밝히고 있는 등대를 보았다. 



파도 치는 역동적인 바다를 보기 위해 항구를 빠져나가 해안으로 갔다. 
제법 기운 찬 파도가 해안을 향해 부딪쳐 오고 있었다. 
 
바위에 부딪쳐 산산히 깨어질 때마다 우뢰와 같은 소리가 났다. 
또 잠잠해 지면 곧 또 다른 파도가 일어 나를 향해 몰려 왔다. 

파도 치는 바다를 보면 항상 생각나는 시가 있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일제부역행위를 한 사실을 알고 난 뒤 뇌리에서 'delete'된 최남선이지만 학창 시절을 지배하다시피 한 그의 시만큼은 무의식의 공간에까지 깊숙히 박혀 있기 때문일까. 

그 파도 너머, 저 수평선에선 해가 뜨기 시작했고 새벽 바다를 가르며 고깃배들은 마지막 그물질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해가 수평선 위로 솟아 올랐나보다. 
하지만 얄밉게도 해는 그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두텁게 내려앉은 구름 사이사이로 그 황홀한 빛만을 뿜어낼뿐...




하지만 마치 해가 구름을 조금씩 조금씩 그 빛으로 부시고 있는 듯 한 그 풍경은 일출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처음엔 한 군데서 새어나오던 태양빛은 두군데, 세 군데에 뿜어져 나왔고. 세상은 더욱 환하게 밝혀졌다. 

등대와 파도와 태양과 함께 한 새벽 바다... 
차라리 사진 찍기에 열중하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만 했음 더 좋았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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